[애니추천] 시귀
[애니추천] 시귀
제목 : 시귀
화수 : 24화(22화 + OVA 2화)
장르 : 호러, 스릴러, 미스터리
감독 : 아미노 테츠로
원작 : 오노 후유미/후지사키 류
제작 : 동몽
2010년 7월 방영 시작
1. 개요
원작은 '십이국기'로 유명한 오노 후유미의 소설로, 1998년 발행되었으며, 제52회 일본 추리 작가 협회상 장편부문 후보작에 올랐던 작품이다. 이후 2008년 '봉신연의'를 그린 만화가 후지사키 류가 이 소설을 코믹스화시켜 다시 유명해지게 되었고, 이 인기에 힘입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 2010년 7월 부터 후지 TV의 노이타미나로 총 22화, 2쿨 분량으로 방영되었다.
2. 시놉시스
인구 약 1,300명의 작은 마을 소토바. 외부로 연결된 길은 국도 하나뿐이어서 거의 주위로부터 단절되다시피 한 이 땅에는 아직 토장 관습이 남아 있다. 어느 날 산 속에서 마을 주민 3명의 시체가 발견된다. 마을의 유일한 의사 오자키 토시오는 사망 확인을 하면서 의문점을 느끼지만, 타살 등의 범죄 사건은 아니라는 판단 하에 자연사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어가고, 처음에는 전염병을 의심했던 사람들도 전염병의 징후를 찾을 수가 없자 점차 엄습해 오는 공포와 불안에 떨게 된다. 비로소 마을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이 마을은 죽음에 의해 포위되어 있다."는 것을...
3. 등장인물
4. 개인적인 평가
일본의 여류 소설가 오노 후유미는 '십이국기'로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녀의 전문 분야는 호러 장르이다. 그녀의 손에 의해서 많은 명작 호러 작품이 작품했는데, 지금 다루고 있는 '시귀' 역시 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1998년에 발행된 원작 소설은 당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며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평단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거머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10여년의 시간이 흘러, 이 작품은 코믹스로, 다시 애니메이션으로 재창작되기에 이른다. 작품의 가치는 이 소설의 팬인 필자 역시 공인하는 바이지만,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는 소식에는 적잖이 놀랐던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굉장히 어둡고 무거운 작품인데다 최근의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어필할 대중적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맥락에서 작품의 여러 부분이 각색될 것이 분명했기에 불안감 역시 엄습했다. 알다시피 각색이라는 작업은 원작의 완성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신중해야만 한다. 교묘하게 맞춰져 있는 밸런스가 조금의 틀어짐으로도 전혀 다른 색깔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원작 소설에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작품에서의 각색은 결과적으로 필자에게 아쉬움을 남기게 되었다. 필자의 우려대로 작품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좀 더 상업적인 매체로 이동하면서 상당한 변형이 이뤄졌는데, 우선적으로 캐릭터 디자인이 파격적으로 묘사되었다. 솔직히 결과물은 첫 인상부터 상당히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체형은 물론, 형이상학적으로 그려진 캐릭터들의 헤어스타일은 이 작품의 색깔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저연령층 작품에서나 나올 법한 초현실적인 헤어스타일에 필자는 이 작품을 감상하기 이전부터 깊은 한숨부터 나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점은 다른 곳에 있었다. 본래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는 시귀들의 습격에 의해 점차 확산되어 가는 마을의 공포를 다루고 있고, 후반부는 시귀의 존재를 알게 된 인간들의 잔인한 복수극을 다루고 있다. 시귀라는 이질적 존재의 침입에 사람들은 공동체 의식을 토대로 자기 방어행동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공포와 분노로 인해 점차 변질되어 가고, 결국에는 마녀사냥과 이분법적 군중심리에 사로잡혀 광기어린 파괴를 반복하게 된다. 심지어 이들은 종국에는 가학적 파괴욕구까지 더해져 시귀를 사냥하는 악마로 변해버린다. 원작자 오노 후유미는 이를 통해 배타성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하고자 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원작의 주제의식이 변질되고 만다. 작품에서 캐릭터가 크게 변경된 것은 3명이다. 고교생 나츠노와 술집주인 토미오, 그리고 여고생 메구미인데, 이 중 나츠노와 토미오의 바뀐 캐릭터는 이 작품의 본래 색깔을 퇴색시켜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츠노는 2차 창작물을 위해 재구성된 미형 캐릭터로 작품 구성상 미흡한 장면은 대부분 그가 관여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작품에 녹아들지 못한 급조된 캐릭터의 느낌이 강하며, 종국에 그가 타츠미와 벌이는 논쟁은 정면으로 원작의 주제를 반박하고 있으니 실로 총체적 난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술집주인 토미오는 원작의 경우 광기와 가학적 파괴욕구의 화신으로 변질되어버린 인간의 막마성을 직접적으로 상징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주동자로 시작하지만, 시귀 사냥을 거듭해 나가면서 잔혹한 괴물로 변해간다. 시귀는 물론, 무고한 인간마저 무차별으로 살육하게 되는데, 종국에는 파괴를 통해 가학적 흥분에 사로잡히는 모습마저 보여준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러한 묘사가 대부분 삭제되고, 마을의 수호신처럼 그려지며, 종반부에서는 원작에 없던 조화와 질서에 대해 부르짖기도 한다.
즉, 나츠노와 토미오의 변형된 캐릭터를 통해 애니메이션은 "인간도 시귀도 모두 옳지 않으며, 결국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다."는 원작과는 다른 흔한 일반론을 내세우고 싶은 듯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시도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대로 원작의 구성은 철저히 처음부터 '집단의 배타성에 대한 비판의식'을 전제로 만들어진 만큼, 표면적인 인물 변화로 인한 주제의 변형은 오히려 본질을 흐리게 만들고, 결국엔 이 작품을 충격적인 이미지만 선명하게 남는 어정쩡한 상태로 끝내 버리고 만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버전에서 더해진 각색이 모두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다. 그 성공적인 케이스가 바로 여고생 메구이이다. 처음부터 마을을 벗어나고자 했던 그녀는 마을이 가진 배타성에 의해 탄생한 부산물로 그녀가 이후에 보여주는 행동들은 모두 다 이 배타성에 대한 증오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애니메이션에 새로 추가된 그녀의 후반부 독백은 바로 이 작품의 주제와 그대로 맞닿아 있으며, 작품을 완성케 하는 마침표와도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애니메이션 버전의 진정한 주인공이자 최대 수혜자는 메구미가 이닐까 생각한다.
애초에 작품이 가진 완성도가 상당히 높기에 극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만으로도 스토리 전개는 매끄럽게 진행된다. 게다가 영상화로 인해 더해진 시청각 효과의 극대화는 극 전반부의 분위기를 한층 더 실감나게 만들어준다. 준수한 연출과 몰입도 높은 스토리 전개로 인해 첫 인상에서 느낀 캐릭터 디자인의 이질감은 상당부문 상쇄되며 차츰 익숙해지게 된다. 후반부의 경우에는 내용 변화가 작품의 본질을 흐리면서 아쉬움을 더하지만, 메구미의 재발견과 같은 의외의 선방도 있고 해서 결과적으로 보면 마냥 실망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보통 원작과 2차 창작물을 별개로 보는 편이지만, 이 작품만큼은 원작을 꼭 탐독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이유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애니메이션이 가진 불완전성의 보완과 메구미의 재발견 때문이다. 원작을 접하게 된다면 분명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색다른 재미와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8.0점/10.0점
(사진 = ⓒ동몽)